코발트 단편소설 신인상, 소겐SF단편상을 수상한 작가의 첫 연작 소설집!
유려한 필치와 섬세한 묘사를 앞세워 SF와 순문학의 경계를 과감히 허문 문제작!
신체를 포기하고 ‘디지털 이민’을 선택한 이들의 여섯 가지 이야기
신체적 장애로 생활에 어려움을 겪거나 질병으로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디지털 이민, 즉 인격 정보화 서비스는 희망의 등불과도 같았다. 이들은 가상 세계로 이주한 뒤에도 현실의 가족, 친구와 연락을 주고받고 일도 하면서 이전과 같은 삶을 이어나간다. 서비스 초반에는 불사의 존재로 여겨졌지만, 불과 2년 만에 정보 인격의 ‘소멸’ 현상이 발견되면서 이들은 또다시 죽음에 직면한다. 과연 절망 속에서 다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신체를 잃었지만 여전히 미래를 꿈꾸고, 인간관계를 고민하며, 때론 낙담하기도 하는 정보 인격은 우리와 같은 인간인가, 아니면 그저 데이터에 불과한 존재인가. 이 책은 이 책은 요네자와 호노부 ‘소시민 시리즈’ 등으로 유명한 출판사 도쿄소겐샤가 주최한 제13회 소겐SF단편상을 수상한 작가의 연작 소설집이다. 여섯 편의 소설을 통해 인간의 존재에 관해 사유하게 하고, 유려한 필치와 섬세한 묘사를 앞세워 SF와 순문학의 경계를 과감히 허문다.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의 상당수는 가상 세계 내부보다는
바깥세상인 현실과 더 강하게 연결돼 있지 않을까요.”
정보 인격이 되었지만 여전히 현실 세계와 연결되어 살아가는 사람들
표제작 「바람이 되기에는 아직」에서 정보 인격인 코하루는 대학 동창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하루 동안 살아 있는 몸을 빌리는 서비스를 이용한다. 몸을 빌려준 사람은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대학생. 하나의 몸을 공유하며 두 사람은 특별한 하루를 보낸다.
「손안의 꽃 따위」에서는 VR 면회 서비스로 가상 세계에 접속해 정보 인격이 된 할머니와 만나는 손녀 유카가 등장한다. 어느 날 평소처럼 접속을 끊고 현실로 돌아오려던 유카는 집안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누구와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 결국 로그아웃을 하지 않고 처음으로 가상 세계의 거리를 돌아다닌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여성의 초대를 받고 그녀의 집에서 다양한 정보 인격들과 만나면서 이곳도 또 다른 현실임을 깨닫는다.
「사실은 하늘에 사는 것조차」에는 가상 세계로 이주한 전설적인 건축가 시키시마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소멸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을 의뢰받고 동료 세이지와 함께 참여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녀가 제안하는 아이디어는 하나같이 아슬아슬한 것들뿐. 그런 모습이 불안해 보였던 세이지는 그녀를 찾아가 단도직입적으로 그 이유를 묻는다. 그리고 그 물음에 답하면서 시키시마는 자신이 놓치고 있던 문제점을 발견한다.
이 책에서는 현실 세계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살아 있는 신체를 빌리는 사람,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가상 세계에 접속하는 손녀, 정보 인격이 된 이후에도 현실 세계에서의 유명세를 이어가는 건축가 등 현실과 긴밀하게 연결된 가상 세계 이야기를 다룬다. 이를 통해 작가의 톡톡 튀는 상상력을 즐김과 동시에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고민과 문제점 등을 들여다보고 사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화면 너머에만 존재하는, 끌어안기는커녕 손도 잡아주지 못하는 인간을
과연 아버지라 할 수 있을까.”
신체와 자유, 인간다운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유한한 밤이라 해도」에서 하이바라는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친구 미모리가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미모리는 정보 인격이 되느냐, 아니면 치료에 희망을 걸어보느냐,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무엇이 최선의 선택일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그 자유로운 눈동자로」에서 학창 시절, 같은 반 친구들에게 큰 상처를 받고 집 밖에 나가지 못하게 된 하유루는 한 소셜 미디어에서 토오루라는 남성을 알게 된다. 거짓말처럼 그에게 매료된 그녀는 각고의 노력 끝에 그와 만나지만 토오루는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게다가 정보 인격이 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가상 세계로 이주할 계획이었고, 하유루는 신체를 버리고 그를 따라 정보 인격이 되기로 결심한다.
「너의 흔적이 찾아오기를」에서 쓰바사는 자해할 정도로 힘들었던 시절 손을 내밀어준 친구 리치의 집에 얹혀서 생활한다.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던 중 리치가 죽을병에 걸려 치료법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하지만 곧 가상 세계로 이주해 살아가는 방법이 실용화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둘은 함께 정보 인격이 된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전조도 인사도 없이 리치는 소멸해버린다.
이 책의 배경인 가상 세계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생활을 하면 소멸 위험이 높아진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은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사회에서 살아간다. SF이지만 현실과 흡사한 세계가 배경이기에 별도로 세계관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 또한 유려하고 섬세한 필치로 인간이라는 존재에 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SF와 순문학의 경계를 과감히 허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신체를 유지한 채 자유를 잃은 삶과 신체는 없지만 자유로운 삶. 과연 무엇이 인간다운 삶일까.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좋은 집, 좋은 직업을 가지고 겉으로는 안정적인 인생을 사는 듯 보이지만 고된 업무에 쫓기느라 삶의 대부분을 일에 쏟아붓고 여가를 즐기지 못한다면 과연 인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는가? 또한 인공지능과 사람의 경계가 점점 흐려져가는 시대에 우리가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을 읽으며 한 번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목차:
바람이 되기에는 아직
손안의 꽃 따위
유한한 밤이라 해도
그 자유로운 눈동자로
사실은 하늘에 사는 것조차 (2026년 성운상 일본 단편 부문 후보)
너의 흔적이 찾아오기를

